분쇄 색도 80, 90, 100. 세 숫자가 모두 "라이트 로스팅"이라는 이름으로 불렸습니다. 한국에서 로스팅하는 일곱 명에게 각자의 기준을 물어본 결과입니다.
누가 틀린 것이 아닙니다. 일곱 명 모두 자기 현장에서 매일 커피를 팔고 있고, 각자의 기준은 그 현장에서 잘 작동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같은 단어를 쓰면서 서로 다른 지점을 가리키고 있다면, 그 단어로 나누는 대화는 어디까지 유효할까요. 이 연재는 거기서 출발합니다.
무엇을 물었나
세 가지를 물었습니다. 정의(나에게 무엇이 약배전인가, 언더디벨롭과 오버디벨롭의 기준은 무엇인가), 방법(어떻게 볶는가), 품질 관리(무엇을 재고 무엇을 기록하는가). 이상론이 아니라 지금 적용하고 있는 기준으로 답해달라고 부탁했고, 현행 방식의 문제점이나 의문도 함께 남겨달라고 했습니다.
응답자는 로스터 A부터 G까지 익명으로 표기합니다. 알파벳 순서는 응답 순서나 경력과 무관하게 섞었으며, 로스팅기 기종처럼 식별이 가능한 정보는 일반화했습니다.
A. 정의 — 결과로 말하는 쪽과 숫자로 말하는 쪽
로스터 | 나에게 약배전이란 | 언더·오버를 가르는 기준 |
A | 향미가 잘 발현되면서 캐러멜화가 적게 일어난 커피 | — |
B | 색이 밝고 맛에서 산미가 강조되는 배전도 | 맛. 풋내가 나면 언더, 탄 쓴맛이 나면 오버. 수치로 규정하기 어렵다고 봄 — 겉은 타고 속은 덜 익는 경우가 있으므로 |
C | 본인은 라이트 로스팅을 하지 않음. 그에게는 분쇄 색도 100 이상이 라이트의 영역 | 커핑. 향미·질감·클린컵·애프터테이스트에서 웰디벨롭과 구분되는 지점이 있다 |
D | 생두가 가진 향미와 품종·가공의 특성을 최대한 남기기 위해 열적 변화를 비교적 적은 지점에서 의도적으로 멈춘 로스팅 | 컵에서 그 밝은 로스팅이 완성되어 있는가. 산미가 깨끗하고 단맛이 받쳐주며 후미까지 안정적으로 이어지면 잘 디벨롭된 라이트 |
E | 사전적으로는 분쇄 색도 70 이상, 실제 매장에서는 80 이상 | 라이트라 해도 디벨롭은 충분히 되어야 한다고 봄 |
F | 컵 프로파일로 정의해야 함. 색도와 무게감소는 변수가 너무 많아 기준이 될 수 없다 | 생두에서 오는 수렴성 있는 식물성 쓴맛이 언더 디펙트의 특징 |
G | 생두 고유의 향미가 잘 드러나고 산미와 질감을 방해하는 요소가 없는 볶음정도 | 쓴맛 없는 부드러운 산미와 발향 |
일곱 중 다섯은 결과로 정의했습니다. 맛이 이러이러하면 라이트고 저러저러하면 언더라는 식입니다. 숫자를 제시한 사람은 둘뿐이었고, 언더와 오버의 판정은 일곱 중 여섯이 관능에 맡깁니다.
색도 축 위의 20점
숫자를 댄 두 사람의 값이 서로 맞지 않습니다. E는 매장 기준 분쇄 색도 80 이상을, C는 100 이상을 라이트로 봅니다. 여기에 B가 방법 항목에서 밝힌 목표치 — 보통 분쇄 색도 90 내외, 게이샤나 에티오피아 워시드처럼 플로럴한 특성이 필요할 때는 100 내외 — 를 겹치면 축 위에 세 점이 찍힙니다.
80 · 90 · 100. B가 매일 볶는 커피는 E의 기준에서는 라이트지만, C의 기준에서는 라이트가 아닙니다. 세 사람 모두 같은 척도를 쓰고 있는데도 라벨이 다릅니다.
B. 방법 — 숫자를 끝까지 적은 한 사람
프로파일을 수치로 공개한 응답은 하나였습니다. B는 생두의 관능적·물리적 특성을 고려해 대략의 배전도를 계획한 뒤, 투입 온도 240℃(드럼 온도계), 중점 70℃, 1차 크랙 10분 내외, 디벨롭 타임 1분 10초 내외로 볶습니다. 배출은 1차 크랙 후 보통 8℃를 더 진행하고, 색도 100 내외를 원할 때는 6~7℃만 진행합니다.
이 프로파일의 DTR은 약 10%입니다. 흔히 인용되는 18~24%와는 상당히 떨어져 있고, 오히려 스칸디나비아식 프로파일로 알려진 12% 안팎에 가깝습니다. 수치로는 규정하기 어렵다고 답한 로스터의 프로파일이, 정작 통상 수치 기준의 바깥에 있다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1차 크랙의 판단도 갈렸습니다. B는 소리·온도·시간을 종합하고, G는 크랙이 명확하게 들리는 생두는 소리로 그렇지 않은 생두는 온도로 판단합니다. C는 투입 온도·DTR·배출 온도를 미리 정해두고 시작한 뒤 결과를 커핑으로 평가해 다음 프로파일을 고민하는 방식입니다.
밝게 볶을 때 가장 신경 쓰는 구간도 제각각입니다. B는 갈변 후반부에 화력을 조금 줄여 1차 크랙이 천천히 오게 하는 것과 디벨롭 타임이 너무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게 하는 것을, G는 마이야르부터 배출까지의 구간과 크랙 이후를, C는 더 밝은 포인트를 잡기 위해 크랙 이후 DTR을 얼마로 가져갈지를 먼저 봅니다. A는 낮은 화력으로 천천히 볶는다고 답했습니다.
언더가 나왔을 때 가장 먼저 바꾸는 변수
이 문항에서 답이 정확히 갈렸습니다.
•
B — 색도와 커핑을 보고 판단. 풋내가 나면 화력을, 살짝 너티한 정도면 배전도를 조절
•
G — 초반의 충분한 열량 공급과, 그 열량을 받아낼 수 있는 생두의 조건
•
C — DTR과 배출 온도를 가장 먼저 고려
크랙 이전의 열량을 건드리는 쪽과 크랙 이후의 시간을 건드리는 쪽으로 나뉩니다. 같은 증상에 정반대 방향의 처방이 나온 셈입니다.
D. 품질 관리 — 재는 것과 재지 않는 것
로스터 | 계측·기록 | 출고 기준과 언더 배치 처리 |
B | 수율·색도·커핑·프로파일. 프로파일 그래프, 중량 손실, 색도, 수분, 커핑 노트를 모두 기록 | 풋내가 나면 폐기, 살짝 너티한 정도면 출고 |
C | 색도(원두·분쇄 각각), 수분, 조밀도. 프로파일 그래프와 중량 손실을 기록하고 커핑은 매일 | 생두와 계절이 바뀌지 않는 한도에서 프로파일과 물리 측정값의 재현성·일관성. 언더는 정도를 파악해 폐기 또는 블렌딩 |
G | 색도·손실률·추출수율. 추출과 커핑을 통한 향미 분석까지 기록 | 왠만하면 출고. 로스팅 디펙트는 폐기하거나 직원 연습용으로 전환 |
A · E | 커핑 | — |
세 가지가 눈에 띕니다.
원두와 분쇄를 둘 다 재는 사람은 한 명뿐입니다. 표면과 코어의 발달 격차를 보는 색차(ΔA)는 이 주제에서 가장 직접적인 지표인데, 일곱 중 한 명만 그 값을 산출할 수 있는 상태입니다.
성문화된 출고 기준을 가진 사람도 한 명뿐입니다. 나머지는 사람의 판정에 맡깁니다. 한 명은 이 칸을 비워두었습니다.
언더의 일부는 실제로 출고되고 있습니다. 풋내는 폐기하되 살짝 너티한 정도는 출고, 왠만하면 출고, 정도에 따라 블렌딩. 현장에서 언더는 이미 있다/없다의 이분법이 아니라 정도의 문제로 다뤄지고 있습니다.
지표 자체를 심문한 두 응답
일곱 건 중 두 건은 관행의 기록이 아니라 지표에 대한 논증이었습니다.
F는 라이트 포인트를 정의할 수 있는 후보로 컵 프로파일·색도·무게감소를 놓고 하나씩 검토했습니다. 색도는 마이야르 반응과 캐러멜화로 생성된 색소의 누적량이므로 동일 생두·동일 기기·동일 조건에서만 선형적으로 읽힙니다. 환원당과 아미노산의 양, 로스팅 시간, 열이 전달되는 메커니즘, 건조 구간의 조건이 모두 개입하기 때문입니다. 무게감소 역시 수분·세포벽 분해·휘발처럼 감소하는 물질의 종류와 조건이 제각각이라 기준이 될 수 없다고 봅니다. 남는 것은 컵 프로파일인데, 향미 노트만으로 로스팅 포인트를 구분하는 것은 불가능하므로 노트가 아니라 센서리 특성을 분석한 프로파일이 쓰여야 한다는 것이 그의 결론입니다.
여기서 짚어둔 구분이 하나 있습니다. 쓴맛에도 계통이 있습니다. 클로로겐산처럼 생두에 이미 들어 있는 물질에서 오는 쓴맛은 생 풀이나 땡감 같은 수렴성을 동반하는 식물성의 쓴맛이고, 이것이 언더디벨롭의 주요한 특징입니다. 반면 클로로겐산 락톤이나 캐러멜화·스트레커 분해의 부산물, 페닐린단에서 오는 쓴맛은 로스팅이 만들어낸 쓴맛으로 감각적으로 구별됩니다.
또 하나, 열분해가 일어나는 구간은 통상 1차 크랙 종료 이후이고 라이트 포인트는 그 이전이므로, 원칙적으로 라이트의 색은 열분해와 무관합니다. 그런데 로스팅 중 수분이 적정 아래로 떨어지면 열분해가 조기에 시작됩니다. 이때 조기 열분해가 경미하게 일어나 라이트의 특성과 다크의 특성이 동시에 나타나되 불쾌한 맛은 나지 않는 상태가 만들어지는데, 이걸 잘못된 로스팅으로 볼지 라이트의 범주로 볼지는 로스터마다 견해가 다를 것이라고 그는 적었습니다.
D는 다른 각도에서 같은 곳에 도착합니다. 그에게 계측값은 지금 이 커피가 어느 배전도에 있고 어떤 프로파일을 거쳤는지를 설명해주는 참고자료입니다. 최종 판단은 컵에서 내립니다. 다만 관능만 보고 바로 언더라고 결론 내리지는 않는다고 했습니다. 추출이 잘못됐을 때도 비슷한 인상이 나오기 때문에, 색도·중량감소율·프로파일·생두 특성·추출성을 함께 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라이트 로스팅은 덜 볶은 커피가 아니라, 덜 변화시키되 필요한 변화는 충분히 만들어낸 커피다. 언더디벨롭은 그 필요한 변화가 충분히 일어나지 못한 상태에 가깝다. — 로스터 D
일곱 명에게서 나온 세 개의 질문
설문은 답을 모으려고 시작했는데, 실제로 모인 것은 질문이었습니다.
1.
80과 90과 100이 모두 라이트라면, 이 축은 무엇을 재는 축인가. 색도는 배전도의 도착 지점을 말해줄 뿐 발달의 충분함을 말해주지 않습니다.
2.
크랙 이전인가 크랙 이후인가. 같은 언더 증상에 화력, 초반 열량, DTR이라는 세 가지 처방이 나왔습니다. 셋이 서로 다른 원인을 가정하고 있습니다.
3.
어디부터 못 파는가. 풋내와 너티 사이 어디엔가 출고선이 있습니다. 그 선을 숫자로 옮길 수 있을까요.
다음 편에서는 이 질문들을 들고 바깥을 봅니다. SCA를 비롯한 기관이 무엇을 정의했고 무엇은 정의하지 않았는지, 그리고 해외 연구는 언더디벨롭을 어떻게 다뤄왔는지를 정리합니다.
연구 과제 — 임시 목차
설문과 토론에서 나온 질문들을 검증할 수 있는 형태로 옮겨둔 초안입니다. 순서도 범위도 진행하면서 바뀝니다.
과제 | 묻는 것 | 방법 | 상태 |
R1 색차와 관능 | 표면과 코어의 발달 격차(ΔA)가 사람의 언더 판정과 얼마나 겹치는가 | 동일 생두를 정상·언더·베이크드 세 단계로 볶아 블라인드 커핑. 원두와 분쇄 색도를 각각 측정해 판정과 대조 | 1회차 토론회 |
R2 판정 경계값 | 다수가 언더로 뒤집히는 수치 지점은 어디인가 | 참가자별 판정을 취합해 색차·원두 수분·총손실율 구간별로 분포를 그린다 | R1 이후 |
R3 언더와 미추출 | 둘을 수치로 분리할 수 있는가 | 분쇄를 극단적으로 가늘게 하고 고온 장시간으로 밀어붙였을 때의 수율 상한과 땡음이 터지는 시점 비교 | 준비 |
R4 색도의 선형 구간 | 색도가 발달을 설명하는 조건은 어디까지인가 | 동일 생두·동일 기기에서 프로파일만 바꿔 색소 누적과 컵을 대조 | 미착수 |
R5 쓴맛의 계통 | 생두에서 오는 수렴성 쓴맛과 로스팅이 만든 쓴맛을 관능으로 갈라낼 수 있는가 | 두 계통이 대비되는 샘플을 나란히 놓고 용어를 먼저 맞춘 뒤 블라인드 | 미착수 |
R6 조기 열분해 | 라이트와 다크의 특성이 동시에 나타나되 불쾌하지 않은 상태를 무엇으로 부를 것인가 | 수분이 낮은 배치를 의도적으로 재현해 두 특성의 동시 출현 여부를 확인 | 미착수 |
R7 시판 약배전 분포 | 국내 시판 약배전은 색도 축 위 어디에 모여 있는가 | 익명으로 수집해 색도 측정 후 블라인드 커핑. 브랜드는 끝까지 비공개 | 원두 수집 |
R8 물의 개입 | 물이 언더 판정을 얼마나 흔들어놓는가 | 알칼리도와 마그네슘을 달리한 물 4종 × 디벨롭 3단계 교차 커핑 | 설계 완료 |
과제가 진행되면 각각을 별도 기록으로 분리하고 여기에는 링크만 남깁니다. 기각된 가설도 지우지 않고 그대로 둠니다.
다른 주제로 가기
커피친구들에서 같이 파고 있는 주제들입니다. 한 편씩 독립적으로 읽히도록 쓰되, 서로 물려 있는 지점은 본문에서 링크로 연결합니다. 발행된 글은 제목에 링크가 붙습니다.
주제 | 무엇을 다루나 | 상태 |
한국 로스터 7인에게 물었다 | 국내 로스터 7인의 정의·방법·품질관리 설문 종합. 색도 축 위 80·90·100의 간극 | 지금 이 글 |
배전도 지표와 디벨롭 지표는 다른 질문에 답한다. 색도·색차 ΔA·총손실율·원두 수분·밀도비·수율 상한을 범위와 함께 정리하고, 현장에서 쓸 최소 다섯 항목을 고른다 | 집필 예정 | |
SCAA/Agtron 색도 타일 8단계와 Gourmet·Commercial의 차이, 2024년 CVA 전환. 해외 연구의 결점 5분류와 마커 물질 | 집필 예정 | |
탄산염(CaCO₃·MgCO₃)은 CO₂가 있어야 녹고, 황산마그네슘·소금·구연산칼슘은 그냥 녹는다. 커핑용 표준수를 매번 같게 만드는 방법과, 농축 스톡이 안 되는 레시피가 있는 이유 | 자료 정리됨 | |
알칼리도와 마그네슘을 달리한 물 4종 × 디벨롭 3단계 교차 커핑. 같은 원두가 물을 바눔으로써 언더로 판정되는지를 본다 | 설계 완료 | |
국내 시판 약배전을 익명으로 모아 색도를 재고 블라인드로 마신다. 브랜드는 끝까지 비공개 | 원두 수집 | |
『에스프레소의 과학』을 읽고 남은 질문들. IR 지표는 결국 EY의 다른 이름인가, 미분 이동에 임계 유량이 존재하는가, 그리고 저자가 남긴 것은 결론이 아니라 방법이었다는 점 | 초고 있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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