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제3의 물결 ⑥ - 비다스 테크 방정호 기술이사, 국내 최초 상업용 에스프레소 머신을 만들다
그는 바리스타였다. 아니 커피전문점의 오너였다고 해야 정확할 것 같다. 적어도 필자가 스페셜티 커피를 알게 될 즈음인 2011년 후반만 해도 그는 분명 커피전문점의 오너이자 바리스타였다. 당시에 La Caffe라 불리던 성동구 행당동의 카페는 스페셜티 커피를 맛볼 수 있는 성동구의 유일한 카페였다.
(사진설명: 비다스 테크 사무실에서 도면 작업 중인 방정호 기술이사)
바리스타 시절의 방정호 기술이사는 독특한 바리스타이긴 했다. 바리스타이면서 머신 엔지니어로서 국내에 몇 안되는 에스프레소 머신 리빌트 및 튜닝 전문가였기 때문이다. 이런 연유로 많은 바리스타들이 에스프레소 머신과 관련된 자문을 방정호 기술이사에게 온오프라인을 통해서 묻던 것을 필자는 알고 있다. 그러나 지금 방정호는 더 이상 바리스타가 아닌 에스프레소 머신 엔지니어가 되어 있었다. 그가 향후 SCAA(미국 스페셜티 커피협회) 이벤트(전시회)까지 바라보는 국내 유일의 상업용 에스프레소 머신 제작자로 탈바꿈할 수 있었던 뒷 이야기가 궁금해지는건 당연한 일인 것 같다.
현재 국내 시장의 에스프레소 머신은 이탈리아, 미국, 스페인 등 해외 에스프레소 머신이 거의 잠식하고 있다. 물론 이탈리아의 경우 에스프레소 머신의 역사가 100여년에 가깝기 때문에 네임밸류에 있어서 본다면 필적하기 어렵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기술이나 역량에 있어서 결코 국내를 비롯한 다른 나라들이 에스프레소 머신을 만들지 못할 이유가 없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국내 가정용 에스프레소 머신 제작 업체인 '엘로치오'의 엄용회 대표가 말한 것처럼 부품 인프라의 부족과 국내 시장의 수요가 아직은 해외 머신으로 쏠려 있다는 것이다. 이탈리아의 경우에는 실제로 서유럽의 길목으로 유럽의 중국과 같은 곳이기 때문에 동유럽의 값싼 부품 인프라를 이용해서 서유럽으로 퍼블리싱할 수 있는 장점을 가졌다.
하지만 한국의 경우 언어적, 지역적 폐쇄성으로 인해 한계가 있어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때문에 국내 에스프레소 머신 시장에 새 바람을 일으키기 위해서는 에스프레소 머신에 대한 새로운 시각이 필요할 것 같다.
열악한 환경
이런 환경에서 에스프레소 머신을 제작한다는 것은 어찌보면 무모해 보일 수 있는 도전이지 않겠는가. 하지만 그는 계속 두드리고 있고, 심지어 해외 시장을 겨냥하고 있다. 방정호 기술이사의 꿈은 어디까지 실현될 수 있을까. 혹여 역사적 발자취가 될 수도 있는 그의 발걸음을 지금 남겨놓지 않으면 후회될 수 있기에 그를 인터뷰했다.
출처 : 에이빙(AVING)(http://kr.aving.net)
Q1. 바리스타 출신 엔지니어로 알고 있다. 바리스타로서의 과거가 궁금하다. 언제부터 커피에 대해 알게 되었나
무역 회사에서 아르바이트로 일하던 2007년도였다. 당시 회사는 일본에서 여러 물품들을 수입하던 회사였는데 일본에서 잘 팔리는 커피 상품에 관해 리서치하기 위해 출장을 갈 기회가 있었다. 커피를 전혀 모르는 본인이었기에 아무래도 출장 전 한국에서 커피에 대해 좀 배우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서울에서 커피에 대해 배울 수 있는 곳을 찾게 되었다.
Q2. 배운 곳이 어디인가
홍대쪽의 CBSC였다. 지금은 스페셜티 커피쪽에서 꽤 규모 있는 회사이지만 당시에는 숍과 아카데미를 가진 정도였다. 당시에는 바리스타 자격증만 갖게 되면 커피에 대해 더 배울 것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CBSC의 이영민 대표는 커피와 관련된 지식 외에도 에스프레소 머신에 관한 심도있는 이야기들을 했다. 워낙 본인도 기계를 좋아하던 터라 커피를 둘러싼 메커니즘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자료를 찾기가 힘들어서 외국 사이트의 여러 자료들을 찾아보게 되었다.
Q3. 외국의 자료들을 찾는 일이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캐나다에서 8년 정도 유학 생활을 했다. 그런 배경이 커피 메커니즘을 과학적으로 접근하는 외국 사이트들을 보는 데 유리했다.
Q4. 커피에 심취하게 되니 계기가 다른 사람들과는 조금 다른 것 같다
대학 진학 후, 시작은 디자인이었지만 컴퓨터 소프트웨어쪽을 전공했다. 소프트웨어도 무형의 자산으로 유형의 가치를 창조하는 것처럼 무언가 제조를 하고 싶었던 꿈은 항상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Q5. CBSC에서 커피를 배운 이후 얼마 동안 준비했나
1년정도 준비했다. La Caffe란 이름으로 시작했다. 성공적이진 못했다.
(사진설명: 비다스 테크의 에스프레소 머신 소개 브로슈어)
Q6. 창업 이후 라카페에서 비다스 테크까지 유지해 온 것만 해도 성공적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은가
보통의 창업하는 사람들처럼 카페로는 성공적이지 않았다는 이야기이다. 항상 사업에서 선택과 집중의 문제는 어려운 것 같다. 내가 선택하고 집중한 것은 본질이었다. 커피와 커피에 대한 다양한 접근을 통해 고객들이 진정성을 알아주길 바랐다. 하지만 현실의 벽을 넘기에는 대중들의 인식이 아직 본질에 접근되어 있질 않았던 것 같다.
우선 위치와 마케팅이 가장 큰 문제였다. 주변의 많은 커피 전문점들과 경쟁하기에는 원가 부담이 너무나 컸다. 때문에 좋은 커피와 함께 화덕 피자를 구웠다. 하지만 그러한 현실적인 타협이 결국 본질을 흐리고 말았던 것 같다. 나름 스페셜티 커피를 한다고 자부했지만 동네에서는 피자집이라는 이미지가 더 부각되었다. 당시 한국의 카페는 커피보다는 공간으로써의 의미가 더 컸던 것 같다.
Q7. 성공적이지 않았다면 다른 부가 가치를 창출했다는 이야기인가
그렇다. 카페를 하면서도 워낙 에스프레소 머신에 관심이 많아서 국내에서는 볼 수 없는 엔틱 에스프레소 머신을 비롯해서 최신 트렌드의 에스프레소 머신까지 거의 모든 머신을 해외에서 구매했다. 이런 배경이 많은 분들이 본인을 머신 엔지니어로 보게 되는 계기가 된 것 같다. 때문에 머신에 대해 문의를 해주시는 분들이 많아졌고, 매장 콘셉트에 맞는 합리적인 에스프레소 머신을 추천하고 판매하는 일도 겸했다.
Q8. 에스프레소 머신을 리빌트하고 튜닝도 하지 않았나
그렇다. 머신을 팔다 보니 머신 수리에 대한 문의도 많아졌고, 해외의 숍들처럼 자신의 숍 콘셉트에 맞는 개성있는 에스프레소 머신을 원하는 오너분들도 늘어나고 있었다. 때문에 중고 에스프레소 머신을 해외에서 수입하여 부품들을 모두 교체한 후 외관까지 숍 콘셉트에 맞게 리빌트하는 작업을 했다.
Q9. 에스프레소 머신 리빌트 작업을 하면서 해외 에스프레소 머신 내부도 자세히 보았을 텐데 내부를 분해해보니 만들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나
그렇다. 2010년 정도부터 리빌트를 하기 시작했는데 작업을 해보니 기존의 커피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다양한 시도를 해볼 수 있는 머신을 제작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부품 인프라였다. 미국의 경우에는 부품 인프라가 잘 되어 었어서 AS가 매우 수월하지만 한국의 경우 부품을 모두 해외에서 들여와야 하고 그 수요도 많지 않아 에스프레소 머신을 오래 사용하는 데에도 많은 유지비가 들어가는 것 같다. 이런 상황들이 머신을 제작하고자 하는 동기가 된 것 같다.
Q10. 해외의 에스프레소 머신들이 만족스럽지 못했다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 다만 국내의 커피에 대한 이해도가 깊이 자리잡히지 않은 상태에서 머신을 사용하다 보니 많은 분들이 에스프레소 머신에서 보여주는 수치 자체에 너무 크게 의존하고 있었다. 어차피 머신도 기계이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면 머신 내부에 스케일도 발생하고, 부품들도 노화되기 때문에 문제가 생길 수 밖에 없다. 하지만 그에 대한 대응을 제대로 할 수 없는 환경이 문제라는 것이다.
Q11. 에스프레소 머신이라는 것이 결국 요리 기구라 볼 수 있는데 기계적인 메커니즘외에 기울인 노력이 있나
머신 판매와 리빌트를 한다고 해서 커피에 대한 공부를 게을리 하진 않았다. 항상 본질은 커피이기 때문에 커피와 관련된 이슈가 있으면 항상 누구보다 먼저 접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래서 큐 그레이더(커피 품평 자격증)도 유행하기 전 이미 미국에서 취득했고, 로스팅도 직접 했던 적이 있다.
로스팅 역시 과학적인 접근이 가능하다고 생각해서 외국에서 12킬로 대용량 로스터기를 들여와 커피를 볶아서 납품하기 시작했다. 장사가 꽤 잘 됐는데 문제는 내가 만족하질 못했다. 단순히 기계적 메커니즘을 이해하고 적용한다고 해서 맛있는 커피가 되는 것이 아니라는 걸 깨닫기 시작했다. 그 때쯤 커피 리브레의 서필훈 실장에게 로스팅을 배웠고, 로스팅을 배우면서 깨닫게 된 것은 지금의 회사가 장기적으로 어떤 비전을 가질 수 있을까라는 고민과 회의였다.
선택과 집중에서 로스팅은 내가 해야할 분야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추출에 집중하는 숍이 되기 위한 피보팅을 했다. 사실 본인이 다이렉트 트레이드나 장기적인 관점에서 원두의 QC가 가능할까 생각했을 때 나보다는 이미 장기적인 발전 가능성이 있는 로스터를 발굴하고 선택해서 소비자들에게 열심히 소개하는 것이 차라리 낫다고 생각했다.
결론적으로 최근 국내에 하나 둘씩 생기기 시작한 다양한 로스터의 커피를 취급하는 편집숍으로 라카페의 방향을 정하게 되었다.
Q12. 국내 최초의 커피 로스터 편집숍의 시작이 라카페라니 흥미롭다. 결과는 어떠했나
좋지 않았다. 우선 카페의 위치가 좋지 않았기 때문에 마케팅에 있어서 어려움이 있었고, 여러 커피 로스터들의 원두들을 받아 사용하다보니 재고에 대한 부담감이 상당했다. 이런 사업 모델은 수익성에 있어서 어려울 것이라는 판단에 편집숍 콘셉트의 비지니스 모델 역시 접어야 했다.
Q13. 다양한 비지니스 모델을 시도한 점이 흥미롭기도 하지만 비지니스 모델을 전환할 때의 리스크도 생각했을 것 같다
물론 전혀 아니라고 할 순 없지만 현재의 비지니스 모델을 계속 진행했을 때 오는 리스크에 본능적으로 반응하는 타입인 것 같다. 아마 대학 시절부터 창업이 목표였고, 계속 무언가에 대한 비지니스 모델 사업 계획서를 자주 쓰고 생각해보았던 것이 도움이 된 듯하다.
Q14. 에스프레소 머신 제작을 하는데 특별히 도움이 된 것이 있나
웃긴 것이 카페로써는 그렇게 좋지 않던 지금의 비다스 테크 사무실 자리가 제조업으로 바뀌니 꽤 괜찮은 위치가 되더라. 서울에서 가장 유명한 제조 공장들이 위치한 곳을 꼽으라고 하면 청계천, 문래동, 성수동 등 지금의 위치에서 모두 가까운 곳이다. 도면이나 설계는 본인이 할 수 있었기 때문에 도면과 설계도를 가지고 가서 제조를 의뢰하는데 물리적 시간적인 절약이 가능했다.
또한 해외에서 다양한 에스프레소 머신을 구매하고 분해해 본 것이 가장 큰 도움이 되었던 것 같다. 현재 커피를 시작하고 머신 구매에만 1억 이상을 사용했다. 카페를 운영하는 오너의 입장에서는 매우 좋지 않은 선택이었지만 에스프레소 머신을 공부하고 싶어서 구매했고, 지금의 비다스 테크의 밑거름이 된 것이라 생각하면 후회되지 않는 결정이었다.
Q15. 도움이 된 책은 없었나
굳이 꼽으라고 한다면 이탈리아 에스프레소 머신 브랜드인 라마르조꼬 리네아 에스프레소 머신의 '트러블 슈팅 가이드'이다. 수리 매뉴얼인데 도면이 모두 공개되어 있어서 머신을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이 책 역시도 해외에서 구입했다.
(사진설명: 최근 서울카페쇼 2013에서 데뷔한 비다스 테크 '아킬레스' 에스프레소 머신)
Q16. 현재 개발한 1그룹 머신 헥사곤부터 에볼루씨온 그리고 최근 카페쇼에서 데뷔한 아킬레스 3그룹 머신까지 텍스트만 놓고 보면 하이엔드급 에스프레소 머신들과 큰 차이가 없는 것 같다.
큰 차이가 없다고 말하면 왠지 본인 자랑같아 낯부끄럽지만 사실 그리 대단한 것이 아니다. 구현되느냐 되지 않느냐의 문제는 비다스 테크와 소비자 사이의 신뢰 문제이기 때문에 구현은 당연한 것이다. 하지만 텍스트 상에 표현된 기능들을 구현하는 사용자의 역량이 중요하다고 볼 수 있다. 스페셜티 커피씬에서 30초의 순간을 담당하는 바리스타의 역할이 그렇기 때문에 중요한 것이다.
하지만 비다스 테크의 목표는 단순히 프로들만의 머신이 아닌 누구나 숍에서 마신 커피의 맛을 그대로 가정에서도 마실 수 있는 머신을 만드는 것이다. 물론 일반 소비자들에게까지 알려지기까지는 먼 이야기일 수 있지만 한걸음씩 신중을 기해서 나아갈 예정이다. 우선 가장 큰 목표는 내년 SCAA(미국 스페셜티 커피협회) 이벤트에서 본격적인 데뷔를 하는 것이다.
Q17. 머신 개발자로서 맛있는 에스프레소를 추출하기 위한 팁을 하나 말해준다면 무엇이 있겠나
항상 '본질'을 염두에 두면 좋겠다. 본질은 커피고 아무리 좋은 에스프레소 머신이라도 커피 자체에 없는 맛을 뽑아낼 수는 없지 않은가. 요리의 본질은 재료이고, 커피도 마찬가지이다.
Q18. 머신을 관리하는 팁을 알려준다면
요리 기구를 관리하는 것처럼 위생과 청소를 잘 해주어야 하지 않을까. 결국 노력의 문제인 것 같다. 자동차를 관리할 때 주기적으로 부품을 교체하고 미리 점검하는 것처럼 에스프레소 머신 역시 마찬가지이다. 유지 관리 비용을 아까워해서는 결코 좋은 커피를 만들 수 없다.
Q19. 커피숍 창업에 있어서 조언을 해주신다면
길게 봤으면 좋겠다. 한국인들의 문화 코드 가운데 하나가 '빨리 빨리'아닌가. 창업은 결코 빨리 빨리해서는 안된다. 창업 전 심각하게 창업 후에 내가 무엇을 할지에 대한 고민이 있어야 한다. 창업은 계속되는 고민의 연속이다. 창업 전에는 무엇을 할지 고민해야 하고, 후에는 성장을 위해 무엇을 해야할지를 생각해야 한다.
이런 치열한 고민없이 창업을 하고 프랜차이즈 본사에 모든 것을 맡겨버리니 방황을 하게 되는 것 같다. 창업에 있어서 요행은 결코 없는 것 같다. 특히나 커피라는 테마에서는 소비자들에게 감성적인 접근이 중요하기 때문에 소비자들의 취향을 미리 예측해 가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예측이란 것이 결코 쉬울리 없지 않겠나.
필자의 어린 시절, 열심히 그림을 그려도 그림이 예쁘게 나오질 않는 이유를 알지 못했다. 그 시절 선생님께서 밑그림을 그리면 그림이 더 나아질 것이라고 하셔서 그 말을 듣고 밑그림을 그린 뒤 채색을 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밑그림없이 좋은 그림이 나올 수 없듯이 어떤 산업 분야이건 밑그림을 그리는 사람들은 업계에서 발로 뛰는 사람들일 것이다.
그들이 그려놓은 밑그림 위에 소비자들의 소비가 아름다운 채색이 되어 산업의 씬이 완성되는 것처럼 현재 한국 커피의 제3의 물결은 비다스 테크와 같은 기업들이 한창 밑그림을 그리는 상황이다. 지금 아무 것도 확실한 것은 없지만, 한국의 커피씬이 아름다운 작품으로 남을 것이란 확신을 가지고 열심히 뛰고 있는 비다스 테크의 노력이 채색되어 빛을 발하길 바랄 뿐이다.
(사진설명: 비다스 테크 경기도 광주 공장에서 비다스 테크 1그룹 에스프레소 머신인 헥사곤과 함께 한 방정호 기술이사) 기사 작성/김상갑 기자
출처 : 에이빙(AVING)(http://kr.aving.net)